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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다른 미래를 준비하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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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생의 한가운데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한편의 수필처럼 담아내기...... 오늘이 어렵다고 해서 내일의 꿈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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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05 Jul 2008 02:43:18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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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다른 미래를 준비하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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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주식투자, 시간의 힘을 믿자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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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이번 주 월요일에 영국으로 출장을 갔다가 목요일 저녁에 귀국한 애인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주식시장 완전 하락했네. 어쩌면 좋아 라고.. 바쁜 직장생활 중에서도 애인님께서는 이것저것 공부를 하시더니, 주식시장 직접투자에 뛰어드셨다. 애인님께서 직접 투자에 뛰어드신 건 작년 5월 경부터. 그 당시 종합주가지수가 1800을 넘어 1900을 향해, 그리고 2000을 향해 나아가던 때 였다. <br />
<br />
처음엔 쏠쏠했다. 2004년부터 용돈을 쪼개어 주식투자를 하던 ‘대학생투자자’였던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몇 종목을 골랐다. 나는 주로 ‘우량주 장기투자’의 원칙을 갖고 있었다면, 애인님께서는 ‘테마주’를 집중 공략하셨다. 처음에는 수익률이 좀 괜찮다 싶었는데, 2007년 여름 미국에서 시작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이후 수익률은 급격히 악화되었고, 애인님께서는 자기만의 노하우로 접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br />
<br />
테마주 중심의 단기 전략이 얼마만큼의 수익을 내느냐의 문제는, 주식시장의 상황에 얼마나 발 빠르게 대처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래서 단기 매매는 주로 개인 전업투자자 혹은 기관의 수익률이 더 좋을 수밖에 없다. 직장인이 회사에서 단기 전략으로 주식투자를 한 다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한 일이다. 발 빠른 대응이 힘들기 때문이다. <br />
<br />
게다가 애인님께서는 해외출장을 자주 다니는 직장에서 근무하고 계신지라, 더더욱 적합하지 않은 전략이었다. 그래서 나는 주식 이야기를 할 때마다, 우량주 장기 전략을 권했다. 자신감에 넘치는 애인님께서는 걱정하지마 라는 한 마디로 잘 할 수 있다고 했다.<br />
<br />
내가 우량주 장기투자를 투자 원칙으로 삼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량회사는 쉽게 망하지 않는다. 아는 분 중 한분은 2002년 여름 1000만원으로 하이닉스 주식을 매수했다. 그 당시 하이닉스 주가는 1000원 이하였는데, 향후 회사가 어떻게 생존하느냐 하는 문제로 갈팡질팡 하던 시기였다. 그 당시 그분의 주장은 간단했다. 하이닉스는 망하지 않는다. 왜냐구? 국가기간산업이기 때문이다. 국가기간산업은 국가에서 망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그 분의 주장이었다. <br />
<br />
맞다. 세계에서 우리 경제를 책임지는 반도체 회사인 하이닉스를 망하게 할 수는 없다. 대우그룹이 해체될 때도, 대우조선해양은 건실하게 유지됐다. 조선산업 역시 국가기간산업이기 때문이다. 그 분이 말하는 국가기간산업은 철강, 조선, 반도체 등은 쉽게 회사를 만들 수도 없고, 회사를 망하게 할 수도 없다. <br />
<br />
주식시장의 단기 변동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그러나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고자 한다면 단기 변동을 이용하는 것도, 피해가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하이닉스 주식을 매수했던 그는 5년을 기다린 끝에 30배의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br />
<br />
시간의 힘을 믿어야 한다. 전업투자자가 아니라면, 우량주 장기 투자 전략이 가장 안정적이고 매력적인 방법일 것이다. 주식시장이 계속 하락한다면, 우량 주식을 더 싼 가격에 매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회사의 성장에 대한 믿음, 그리고 시간은 나의 편이라는 긍정적 마인드를 가진다면, 30배의 수익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br />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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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escription>
		<category>About Money</category>
		<pubDate>Sat, 05 Jul 2008 02:41:40 GMT</pubDate>
		<dc:creator>달구</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대학에 낸 돈, 사용처를 묻지말라?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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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부산대에 거액을 기부금을 약정하고 기부금을 출연하던 , 부산의 송회장님께서 기부약속 무효 소송을 제기하셨다고 합니다. <a title="" href="http://media.daum.net/society/affair/view.html?cateid=1010&newsid=20080703183025631&cp=ked"><<span style="color:#000066;">클릭 : 관련기사</span>></a> 이유인즉슨, 당초 기부약정서대로 기부금 집행을 하지 않았고,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송회장 측을 비난하는 등 명예훼손을 했다고 합니다. <br />
<br />
보통 대학에 들어가는 기부금은 기부자가 사용처를 명확하게 지정해주는 ‘특정기부금’과 사용처를 지정하지 않는 ‘일반기부금’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바로 송회장께서 305억원에 이르는 거액의 기부금을 부산대에 출연하면서 ‘양산캠퍼스의 부지대금’으로 사용해달라는 사용처를 지정한 ‘특정기부금’인데, 이를 부산대에서는 ‘일반기부금’처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공과대학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써 달라고 대학에 기부를 했는데, 대학 측이 이를 의과대학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지급한 것 처럼, 당초 기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기부금이 집행된 것이죠.<br />
<br />
가장 큰 문제의 원인은 대학의 투명하지 못한 예산/회계 구조 탓 인 걸로 보입니다. 투명하지 않게 회계를 운영하다보니까, 기존 예산에서 채우지 못한 부분을 송회장의 기부금에서 끌어와 충당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기부금’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학교한테 준 돈 학교에서  쓰고 싶은 대로 쓰지 뭐’ 라고 생각하는 학교 당국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분들은 어린시절 어머니가 책 사보라고 준 돈으로 군것질 한 경험도 많으시겠죠. 어머니의 기부금은 사용처를 명확하게 지정한 ‘특정기부금’인데 이를 받은 자녀는 ‘일반기부금’으로 해석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br />
<br />
비단 기부금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대학은 돈 문제에 매우 민감합니다. 그래서 기부금이든 등록금이든 입학금이든 일단 한 번 학교 계좌로 들어간 돈은 그 사용처를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알려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죠. 약 300억원을 기부 약속하고 약 200억을 지금까지 출연한 기부자조차도 그 기부금의 집행에 대해서 소송을 걸만큼 대학의 회계처리는 투명하지 못한 현실입니다. ‘한번 기부했으면 끝이지 어디다 쓰는지 관심 둬서 뭐해?’ 라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기부자 입장에서는 기부금이 잘 쓰이고 있나를 파악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부의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고, 기부자의 사회공헌 의지가 충족되어야 하는 것인데 , 그 집행이 명확하지 않다면, 기부자는 말 그대로 ‘헛 돈 쓰기’ 밖에 안될 것입니다. <br />
<br />
다음 학기 대학원에 진학합니다. 이제 곧 등록을 해야할 시기인데, 등록금에 입학금도 내야합니다. 등록금은 수업료입니다. 그런데 입학금은 왜 내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같은 학교 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 진학하는데도 입학금을 내라고합니다. 만약 제가 이 학교에서 박사과정까지 진학한다면 한 학교에 입학금을 3번이나 내게 되는 셈입니다. <br />
<br />
그래서 입학금을 왜 내야하는지 , 그리고 입학금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알아보고, 아는 기자 선배에게 부탁해서 재무처장을 만나서 입학금에 대해서 좀 알아봐달라고했습니다. 재무처장은 입학금에 대해 우물쭈물 말을 못했다고 합니다. 기자가 저에게 전해준 말을 옮겨보겠습니다. <br />
<br />
<span style="color:#ff0000;">“입학금은 관행적으로 받는 것이다. 학부 신입생이든 대학원 신입생이든 신입생에게 입학금이 포함된 등록금고지서를 발행하면, 신입생은 등록을 안하면 합격취소가 되므로 다들 내게 된다. 일종의 가욋돈이다. 그거 받아서 건물도 짓고 그러는 거다. 그냥 관행적이다." </span><br />
<br />
관행적으로 입학금을 받는다고 합니다. 어제 여러 교직원과 통화해 본 결과 입학금을 왜 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입학하면서 내는 돈이다.” 라고만 해명합니다. 입학금의 사용처에 대해서는 “ 입학하면서 필요한 행정처리비용이다.” 라고 해명하면서, 그게 왜 궁금하냐고 오히려 되묻습니다. <br />
행정처리비용이 100만원이 넘는답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내가 내는 입학금의 사용처를 궁금해했던 것이 “뭘 그런걸 알려고 하느냐?”라는 핀잔으로 돌아왔습니다. <br />
<br />
부산의 송회장님은 300억의 기부금의 사용처를 명확히 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비난과 명예훼손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내는 ‘입학금’이라는 명목의 돈을 왜 내야하는지, 그리고 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이라는 곳은 그곳이 어느 대학이든 돈에 대해서는 투명하지 못합니다. 돈을 내는 사람은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를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금을 내는 국민이 국가예산 집행이 어떻게 이루어지나를 궁금해하고 그 정보를 공개 청구하듯이, 대학에 기부금을 내는 송회장님도, 한 대학에 입학금을 두번 내게 된 저도 그 돈이 목적대로 쓰이는지, 어디에 쓰이는지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br />
<br />
투명하지 못한 대학 재정의 문제,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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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escription>
		<category>Society</category>
		<pubDate>Thu, 03 Jul 2008 23:47:52 GMT</pubDate>
		<dc:creator>달구</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느긋한 기다림 : 필름카메라 예찬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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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순간의 기억을 담는다? 일상생활에서 카메라는 빠질 수 없는 존재다. 지하철을 타도 버스를 타도,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을 쉽게, 아주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디지털 카메라는 없으면 안 되는, 마치 휴대폰과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디지털 카메라는 참 편리하다. 찍은 사진을 바로 확인 해 볼 수 있다. 필름카메라처럼 스물 네 장 혹은 서른 여섯 장을 다 찍어서 현상소에 갖다 맡기지 않아도 된다.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지 않았는가? 찍으면 바로 사진이 나온다는 그 신기함.<br />
<br />
디지털 카메라는 참 편하다. 한번 사면 별다른 유지비용이 들지 않는다. 찍어서 바로 보고 사진이 맘에 안들면 지워버리면 되고, 맘에 드는 사진은 usb메모리에 담아 사진관에 가서 디지털 인화를 하면된다.  필름카메라는 필름도 사야하고, 찍은 사진을 모두 현상/인화 해야한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br />
<br />
나도 디지털 카메라가 있다. 두 개  있다. 하나는 “똑딱이” ,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쉽다. 그래서 항상 휴대하고 다닌다. 언제 어디서 재미난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그걸 사진으로 담으려면 ‘똑딱이’디지털 카메라만큼 좋은게 없다. 또 하나는 “DSLR” 얼마 전에 구입했다. 똑딱이보다 더 멋진 사진을 찍고 싶어서 구입했다. 그런데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들은 대부분 ‘귀차니즘’으로 인해 컴퓨터에 저장되면서 쌓여간다. 그래서 그냥 하나의 파일로 전락하게 되고, 내 가슴 속에 남는 사진이 별로 없다. <br />
<br />
그래서 필름수동카메라 한 놈을 집에 들여놨다. PENTAX MG 카메라다. 기능도 간단하단다. 그리 비싸지도 않은 놈인데, 집에서 중고로 사놓고 안 쓰는 캐논 SLR 카메라와 교환했다. 스트로브까지 더 얹어서 내가 2만원 내고 업어왔다. 신설동 서울풍물시장에서 교환했는데, 장사도 잘 안된다 하시길래, 내가 분명히 손해보는 거래 같았지만, 그냥 사장님이 하자는 대로 했다. 오~ 왠일이냐 내가 그렇게 후덕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 나도 조금 놀랐다. 얼마전 렌즈필터를 나에게 바가지 씌어 팔았던 ‘용팔이’에게는 인정 사정 없이 들이대서 차액을 환불받지 않았던가…<br />
<br />
필름수동카메라는 디지털 카메라처럼 아무거나 막 찍지 않는다. 이 점이 좋다. 내가 정말 찍고 싶은 순간,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담아준다. 초점이 맞지 않았거나, 카메라가 흔들려서 사진이 선명하지 않아도 좋다.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또한 다 쓴 필름을 감아서 사진관에 현상/인화를 맡기고 나서 기다리는 그 순간의 설레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 기다림. 느긋함이 좋다. 앞으로 디카도 많이 쓰겠지만, 내가 정말 기억하고 싶은 그 순간은 필름수동카메라를 꺼내들어 그 순간을 기록하고 싶다. <br />
<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9.egloos.com/pds/200807/03/64/f0032464_486c674942273.jpg" width="500" height="37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9.egloos.com/pds/200807/03/64/f0032464_486c674942273.jpg');" /></div><br />
<div align="center">* 밑지고 얻어온 필름카메라 PENTAX MG</div><br />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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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ategory>生의 한 가운데</category>
		<pubDate>Thu, 03 Jul 2008 05:46:40 GMT</pubDate>
		<dc:creator>달구</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내 친구는 보수신문 기자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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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고교 3년을 같은 반으로 지내고, 대학도 같은 곳으로 진학한 친구. 그는 현재 기자로 일한다. 문제는 그가 시민들로부터 ‘수구’라고 욕을 먹는 신문사에서 일 한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부터 뛰어났다. 똑똑했다. 논술 준비한답시고 다른 친구들이 논술 학원 강사들이 요약해놓은 기껏해야 10페이지짜리 내용요약을 읽을 때, 그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등을 읽었다. 물론 원전으로 읽은 것은 아니고 번역본을 읽은 것 이지만…<br />
<br />
대학에 와서도 친구는 폭 넓은 공부를 했다. 그는 매일 도서관으로 출근했으며, 사람 만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선배, 동기, 후배 들로부터 ‘좋은 사람’ 으로 인정 받았었다. 한번은 그가 학교에 하얀색 개량한복을 입고 나타난 적이 있었다. 그날 그의 복장은 학교에서 나도 몇 번 본 복장이었는데, 내가 봤을 때는 다른 사람이 입고 있었다. 그에게 물었다. “이건 뭐야? 왜 이런거 입고 다녀?” 그는 껄껄걸 웃으며 대답했다. “ 우리 과 선배 중에 친한 형이 있는데, 그 형이 군대 가면서 나한테 물려주고 갔어. “ 아! 그랬구나. 내가 학교에서 봤던 그 하얀색 개량한복을 입었던 그 사람이 이 친구의 절친한 선배였구나. 보통 사람 같았으면, 그런 거 받아도 창피하다고 입지 않았을 텐데, 이 친구는 선배에 대한 의리를 확실히 지키는 구나. <br />
<br />
어느 날 친구는 나에게 기자가 되겠다고 했다. 기자! 멋진 직업이다. 기자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는 친구는 엄청난 공부를 했다. 이거 저거 책 읽는 거는 물론 , 조선-중앙-동아-문화-한겨레-경향-매일경제-국민-세계일보 등등 거의 모든 신문을 매일 매일 읽고 분석하고 논평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글 읽고 글 쓰는 솜씨는 뛰어났지만, 그렇게 엄청난 양을 소화해내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결국 그는 착실히 그 작업을 진행시켜나갔다. 그리고 그는 졸업을 앞두고 보수(수구)신문에 취업했다. <br />
<br />
처음에 나는 친구의 입사 소식을 들었을 때, 무언가 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 친구의 성향을 생각해봤을 때, 그는 그 신문사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내게 말했다. “기자에게 중요한 것은 특종을 찾아내 보도하겠다는 생각이 중요한 것이지, 언론사의 성향이 크게 중요하지는 않아.” <br />
<br />
그는 기자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나는 나대로 하고 있는 공부가 있었고, 친구는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상 여기 저기 바쁘게 뛰어다녔다. 미국 쇠고기 수입협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촛불집회가 시작되었다. 그는 기자로서 더 바빠지게 되었을 테고, 그의 기사도 인터넷에서 접하게 되는 횟수도 잦아졌다. <br />
<br />
며칠 전이었다. 광화문에서 그를 만났다. 나는 여자친구와 함께 촛불을 들고 있었고, 친구는 카메라기자와 함께 수첩과 펜을 들고 있었다. 오랜만이었다. 서로 바빠서 만나지 못하다가, 광화문에서 만났다. 이게 다 이명박 대통령 덕분이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를 만나게 해주다니.. <br />
<br />
잠깐 친구와 담배를 피우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 네 기사 자주 보는데, 진짜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거야? “ , 친구는 답했다. “ 뭐… 일단 팩트가 있고, 내 생각도 있고 데스크 생각도 있고.” 나는 다시 물었다. “ 너네 신문사가 논조를 확연히 촛불집회를 폭력집회 내지는 폭도들로 몰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일부 폭력행사자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이 비폭력을 외치는 건 너도 잘 알잖아.”  “글쎄다” 라면서 친구는 힘들다고 했다. 물대포도 많이 맞고, 집에도 못 들어가고.. 이게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br />
<br />
힘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더 물어봤다. “근데 너 다음이나 네이버에 니가 쓴 기사에 댓글은 좀 읽어보냐?” 친구는 “ 댓글 읽을 시간도 없어, 읽어봤자 기분만 나쁘지.” 그에게 힘내라고 다시 한번 말해줬다. 그리고 친구와 헤어졌다.<br />
<br />
오늘 포탈에는 친구가 쓴 기사가 상단에 링크되어있다. 넷심 (net心)과는 상반되는 내용의 기사다. 친구는 오늘도 인터넷 상에서 댓글로 욕을 먹고있다. 왜 나의 친구는 욕을 먹을 수밖에 없을까? 그가 보수(수구)신문의 기자여서 그런 것일까?  나도 친구가 속한 신문사는 정말 싫어하지만, 친구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친구는 자기 본분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했다. 언제나 특종을 좇는 그런 열정적인 기자가 되겠다고 말이다. <br />
<br />
시국이 어수선한 지금, 이명박 대통령은 바빠서 못 만난 10년지기 친구를 만나게 해주었지만, 특종을 좇겠다는 신념으로 일하는 친구는 보수(수구)신문 기자라서 욕먹고, 이래저래 피곤하다. 대통령이 밉다.<br />
<br />
------------------------내용추가----------------<br />
댓글 달아주신 분들의 생각, 의견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쓴 글에 대해 잘 이해를 못하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서 글을 간단하게 <span style="color:#000099;">요약</span>해드리겠습니다. <span style="color:#330099;">10년지기 친구가 있다. 고등학교 때 부터 똑똑하고 뛰어난 친구였다. 이 친구가 대학시절 기자시험을 준비해서, 남들로부터 욕먹는 신문사에 입사했다. 촛불집회가 시작되었다. 이 친구는 더 바빠졌다. 친구가 쓴 기사가 인터넷에서 댓글로 욕을 먹고 있다. 친구를 만났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고민했다.</span> 입니다.<br />
<br />
그 고민의 내용은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10년지기 친한 친구인데,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고 내가 싫어하는 직장에 다니고 있고, 그가 인터넷에서 욕을 먹고 있습니다. 그는 '기자'이기 이전에 제 친구인데, 지금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기자인 친구가 저를 설득하거나 강요하지도 않았고, 저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친한 친구에 대한 뭐랄까... 고민? 뭐 적확한 용어를 찾기가 쉽지 않지만 말이죠... <br />
<br />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고민, 그리고 거대언론에 대한 고민... 아무튼 이래저래 피곤한 세상입니다. 근 2년만에 만난 10년지기 친구인데, 서로 반가웠지만 .. 서로의 처지가 그리고 서로의 입장이 애매합니다. <br />
<br />
아무튼 많은 댓글 감사합니다. <br />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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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ategory>사람이 희망이다</category>
		<pubDate>Tue, 01 Jul 2008 08:10:33 GMT</pubDate>
		<dc:creator>달구</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이글루스 운영진에 바란다!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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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이글루스 운영진에게 바란다! 이글루스로 옮겨온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깔끔한 맛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아니 벌써 5주년을 맞이하였던가? 매우 매우 축하드린다. 아울러 이글루스 Forever! 를 기원한다.  <br />
<br />
그러나 두 가지 바라고 싶은 점이 있다. <br />
<br />
첫째, 이오공감에 관련! 이오공감, 즉 이글루스 메인 페이지에 보면 남의 글을 퍼온 것 이나, 그냥 뉴스 긁어 붙이고 그 밑에 욕 몇마디 추가한 것, 그리고 그냥 욕 밖에 없는 배설형 포스트도 많다. 이것은 블로그의 의미와 맞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왜 이글루스 라는 잘 나가는 블로그사이트의 메인 페이지에서 남의 글을 무단 도용한 포스트, 욕설로 도배된 포스트를 봐야만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글루스 운영자의 설명과 혹시 해결책이 있다면 해결책을 바란다.<br />
<br />
둘째, webmaster라고 고객의 문의 사항을 받는 분이 있는 것 같은데, 이 분 너무 바쁘신가? 내가 지난 주에 질문을 올렸는데, 아직도 답을 받지 못했다. 말로는 항상 이용자와 호흡하고 성장한다고 하지만 정작 ‘소통’이 되지 않는다. 이글루스 운영진께서는 이용자들과 어떻게 ‘소통’하실 텐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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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하는 이글루스를 바라며, 나의 두 가지 의문/지적 에 대해서 이글루스 운영진의 명쾌한 해답을 바라는 바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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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ategory>Bloging</category>
		<pubDate>Tue, 01 Jul 2008 00:36:09 GMT</pubDate>
		<dc:creator>달구</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민주화의 의미를 잊은 김영삼 前 대통령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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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p>YS께서 입을 여셨다. 열린 입으로 거침없이 독설을 쏟아내셨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 버릇을 고쳐주라!<a href="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amp;newsid=20080630205103738&amp;cp=hani"><span style="COLOR: #3333ff">&lt;관련기사&gt;</span></a> YS께서 하신 이 말씀. 두고두고 귀에 걸리고 입에 씹힌다. 누가 누구 버릇을 고치라는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p><p><br />
YS께서는 현재 상황을 ‘무법천지’ , ‘무정부상태’라 표현하셨다. 맞는 말씀이다.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지금 모르는 사람은 영영 모른다. 왜냐고? 알려고 하지 않으니까! 촛불을 든 시민들이 ‘정권 퇴진’을 외친다. 왜 ‘정권 퇴진’을 외치겠는가? YS께서는 이 질문에 답을 하실 수 있으신가? YS께서는 ‘헌법으로 보장된 임기’를 거론하시며, ‘정권 퇴진’을 외치는 시민들에게 “그게 말이 되는가?” 라고 쓴 소리를 하셨다.&nbsp; </p><p><br />
자! 여기서 묻지 않을 수 없다. YS께서는 DJ선생과 함께 대한민국 민주화의 산 증인이시다. YS는 이승만 시절 국회의원이 되셨다. 그것도 전무후무한 최연소 국회의원! 3.15 부정선거 이후 4.19 혁명이 일어났을 때, YS께서는 무얼 하셨는가? ‘이승만 정권 퇴진’을 외치지 않으셨던가? 서슬퍼런 군사 독재 시절, 박정희가 YS의 동료 DJ선생을 일본에 까지 가서 납치하고 살해하려 하던 그 시절에, YS께서는 ‘독재 타도’ , ‘군부 정권 퇴진’을 외치며 단식 까지 하지 않으셨던가?</p><p><br />
YS께서는 왜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 임기’를 이제 그만 하라며 ‘정권 퇴진’ 구호를 외치셨는가? 당신만의 특권이 있으신건가? 민주화 지도자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인가? 당신이 죽도록 외쳤던 ‘정권 퇴진’ 구호를 지금 촛불을 든 시민들이 외치면 안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만큼 민주화에 공로가 없기 때문인가?&nbsp; </p><p><br />
두 번째로 궁금한 것! YS께서는 지금 시국이 엄청나게 잘못되었다고 주장하시며, ‘완전히 버릇을 고쳐놔야 한다’ 고 외치셨다. 누구에게 하신 말씀인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하신 말씀인가? ‘법 이전에 대통령의 권위로 다스려야 한다.’ 라는 말을 또 무슨 말인가? 대한민국이 ‘법치국가’ 아니던가? 이명박 대통령이 입만 열면 ‘법치주의 질서확립’이라고 외치는데, 법 보다 권위로 다스리라고? </p><p>자..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의 머슴이 되겠다고 했다. 대통령은 국민의 머슴인 것이다. 그런데, 전직 머슴이 현직 머슴에게 ‘주인 어른의 버릇을 고쳐놔라’ 라고 말했다. 세상 어느 천지에 머슴이 주인의 버릇을 고친단 말인가? </p><p><br />
YS에게 묻는다. 당신이 한 평생 감옥도 가고 가택 연금도 당하고, 단식도 하고 말 못할 핍박 받으면서 이루고자 했던 것이 ‘민주화’(民主化) 아니었던가? 대통령도 하고, 시간도 오래 지나니 이제 민주화가 무슨 뜻인지 잊으셨는가? 잊으셨다면 친절히 설명드리겠다. 백성 民 주인 主 될 化 이다. 백성이 주인이 되는 것이 민주화란 말이다. 당신이 민주화를 위해 싸우기 전, 그리고 싸우는 동안 이 나라는 백성의 것이 아니었다. 군인의 것이었고, 친일파 잔당들의 나라였다. YS 당신이 DJ선생, 그리고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민들과 함께 싸워서 이루어 낸 것이 ‘민주화’ 였고,&nbsp; 당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것도 ‘민주화’였다. </p><p><br />
YS! 당신이 큰 공로를 세운 ‘백성이 주인 되는 나라’가 지금 위기에 쳐해있다. 당신이 진정 민주화투사요 민주화의 아버지라면, 당신은 이렇게 말해야 한다. <span style="COLOR: #cc0000">“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 머슴의 버릇을 완전히 고쳐놔라!”&nbsp;&nbsp;&nbsp; <br />
</span></p><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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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bed src="http://api.bloggernews.media.daum.net/static/recombox1.swf?nid=1398663" quality="high" bgcolor="#ffffff" width="400" height="8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embed>			 ]]> 
		</description>
		<category>Political Thinking</category>
		<pubDate>Mon, 30 Jun 2008 13:45:42 GMT</pubDate>
		<dc:creator>달구</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아프리카 독재의 원인?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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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요즘 지구촌 이슈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일은 아프리카의 짐바브웨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1980년부터 집권한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결선투표에서 야당 후보의 사퇴 속에서, 당선을 선언하자 미국과 EU를 비롯한 서방 세계에서 무가베 대통령을 연일 비난하고 있습니다. <span style="color:#330099;"><<a title="" href="http://newslink.media.daum.net/news/20080630100114621">클릭:관련기사</a>></span>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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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에는 유독 독재자가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요즘 화제가 되고있는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을 비롯하여, 가봉의 오마르 봉고 대통령, 이집트의 무바라크, 리비아의 알 카다피 등등, 아프리카야말로 독재자들의 천국입니다. 문제는 이들이 대부분 ‘선거를 통한 선출’이라는 절차적-형식적 정당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절차적-형식적 정당성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이들이 실질적인 민주적 정당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아닌 듯 싶습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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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는 오랜 기간 영국, 프랑스 등 서방의 식민지로 살아왔습니다. 2차대전 이후 서방 세계가 식민지 정책을 포기하면서, 그리고 내부의 독립투쟁을 통해 아프리카는 독립을 쟁취하게 되었습니다. 독립을 쟁취한 이후 이들은 국가경영방식에 대해 익숙치 않았고, 주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한 재벌 혹은 군벌이 득세하게 됩니다. <br />
<br />
 아프리카 지역에 유독 독재자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겠지만, 저는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첫째, 식민통치의 후유증입니다. 아프리카는 서방 세계의 식민 통치를 받기 전에는 그저 한 부족 또는 여러부족이 연합체를 형성하는 부족국가의 형태를 띄었습니다. 서구 열강들이 아프리카 식민지 확보 경쟁을 펼치면서, 아프리카 대륙을 칼로 자르듯이 국경선을 획정했습니다. 이렇게 식민지 시대에 획정한 국경선을 토대로 독립을 하게 된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부족간의 대립과 격화가 심화되었죠. 식민지 이전에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각 부족이 서로 연관없이 살아오다가,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한 국가에 편입되게 되면서 부족간 영역이 중첩되면서, 부족 간 갈등이 심화된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한 부족이 수적으로 우위를 점하게 되면 그 국가의 정치 역시 한 부족 쏠림 현상이 나타나게 되고, 독재자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지요. <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8.egloos.com/pds/200806/30/64/f0032464_48686d6d63683.jpg" width="500" height="37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8.egloos.com/pds/200806/30/64/f0032464_48686d6d63683.jpg');" /></div><br />
<div align="center">* 국경선이 명확한 아프리카 지도입니다</div><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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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열악한 정치참여 환경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이야 매일 신문보고 뉴스보고 인터넷 하면서, 정치에 관한 소식도 듣고, 인터넷에 댓글도 달면서 나름 정치참여를 하고 있지만,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는 신문 보급도 원활치 않을 뿐더러, 인터넷이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도 얼마 없겠죠. 산 속 오지마을에 사는 사람들도 많으니, 그들이 그들의 대통령이 독재자이며 엄청난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사실도 모르는 경우가 많겠죠. 그래서 아프리카의 독재자들은 더욱 편하게 독재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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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번째로는, 서구 국가들과의 결탁을 들 수 있습니다. 이집트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 입니다. 이집트는 아프리카에 위치한 이슬람 국가인데, 유일하게 이스라엘과 사이가 나쁘지 않은 국가입니다. 물론 예전에는 엄청나게 치고 받고 싸웠지만, 요즘은 친하게 잘 지내죠. 뒤에 미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중동-아프리카 전략 상 이집트는 아주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이기 때문에, 미국이 이집트의 정권을 지켜주는 것이겠죠.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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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의 민주화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까 라는 질문에 대해 지금으로선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들도 참 된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국가의 주인으로서 행동해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미국이 나서면 해결될까요? ‘민주주의 확산’ 이라는 명분으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던 미국에게 아프리카의 민주화도 이루어달라고 해야하는 걸까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앞으로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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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1) 거리를 지나는 봉고차가 왜 봉고차인줄 아십니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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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박정희 정권은 북한과의 체제 정통성 경쟁을 펼쳤습니다. 국제 무대에서 그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함이었는데, 주로 제3세계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그 손길을 뻗쳤습니다. 아프리카의 대통령들을 한국에 초청하여 한국의 산업시설을 시찰하게 하고, 경제협력을 약속하는 등의 외교활동을 펼쳤었는데, 1975년 가봉 공화국의 오마르 봉고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이 때 오마르 봉고는 그 당시 기아차에서 생산된 미니밴을 시승하게 되었고, 그의 이름을 따 그 미니밴을 ‘봉고’라 칭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7.egloos.com/pds/200806/30/64/f0032464_48686dae838a9.jpg" width="500" height="32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7.egloos.com/pds/200806/30/64/f0032464_48686dae838a9.jpg');" /></div><br />
<div align="center">* 1975년 방한한 가봉공화국의 오마르 봉고 대통령과 박정희 (경향신문 자료사진)</div><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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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2)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 에게는 괴짜 아들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축구를 매우 좋아하는 아들인데, 그의 셋째 아들 사디입니다. 근데 이 사람이 워낙에 축구를좋아하는지라 프로팀에 데뷔시켜준 것도 모자라 독재자인 아버지는 덜컥 사디를 국가대표팀 선수로 앉히고 주장직까지 맡기게 됩니다. 실력은 별 볼일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대표 감독은 물론이고 동료 선수들도 너무 황당했고, 원래 국제무대에서 축구로는 이름을 날리지 못한 리비아는 더욱 더 수렁으로 빠져들었답니다. <br />
<br />
더군다나 아버지의 입김으로 축구협회 부회장도 역임했고 국고를 빼내어 이탈리아의 명문 축구 클럽 유벤투스와 라치오의 지분도 사들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사디는 남들이 평생 열심히 뛰어도 밟아보지 못할 세리에 A 무대에 오르게 됩니다. 사디는 2003년에 페루자에 입단하게 되는데요. 당시 페루자의 구단주는 2002월드컵 한국과 이탈리아전에서 골든골을 넣었다는 이유로 안정환을 방출한 바 있는 그 유명한 가우치였습니다. 국제적인 관심을 받기를 원했을테고, 또한 무아마르 알 카다피의 금전적인 지원을 기대한 가우치 구단주의 정치적인 영입으로  대부분 축구전문가들은  해석하고 있습니다.<br />
<br />
그래도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구단주가 감독에게는 크게 간섭을 안하는지 감독이 사디를 기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페루자의 2부리그 강등이 확정된 2004년 5월 3일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 감격적인 데뷔전을 치루었지만, 지금은 은퇴했다고 합니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8.egloos.com/pds/200806/30/64/f0032464_48686df7dcbb8.jpg" width="410" height="34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8.egloos.com/pds/200806/30/64/f0032464_48686df7dcbb8.jpg');" /></div><br />
<div align="center">*리비아 대통령 무아마르 알 카다피의 셋째 아들 사디</div><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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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ategory>Global View</category>
		<pubDate>Mon, 30 Jun 2008 05:26:30 GMT</pubDate>
		<dc:creator>달구</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70원 내고 버스타려는 정몽준의원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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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요즘 한나라당에서는 대표 경선이 한창입니다. 어수선한 정국에서 집권여당의 대표가 누가되느냐하는 문제는 앞으로 한나라당과 정부의 진로에 매우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한나라당 대표가 되겠다고 나선 사람중 하나는 정몽준의원입니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부회장이면서 한국축구협회(KFA)의 회장이면서, 세계최고의 조선업체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이자, 울산대학교의 이사장이면서, 서울 동작 을의 국회의원입니다. 그가 가진 직함이 벌써 여러개이면서, 재산이 3조 6천억원에 달하는 그야말로 1%중의 1% 즉, 대한민국 0.01%에 속한 사람입니다. <br><br>이런 화려한 경력,직함,재산을 자랑하시는 정몽준 의원께서 또 한번 멋진 발언을 해주셨습니다. 지난 27일 저녁에 있었던 한나라당 대표 경선 라디오 토론회에서 우리의 정의원께서는 버스비가 얼마인지를 묻는 공성진 후보의 질문에 “카드로 하니까 한 70원쯤 하나?” 라고 하셨다고 합니다.<br><a title="" href="http://newslink.media.daum.net/news/20080628130509681">&lt;<span style="COLOR: #3366ff">클릭관련기사</span>&gt;</a> <br><br>제가 1989년 초등학교(당시는국민학교)에 입학할 때, 버스비가 70원이었습니다. 그 때는 버스카드는 먼 미래의 일이었고, 어린이 , 중-고생들은 회수권, 어른들은 토큰을 사용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회수권을 사용해보신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10장 짜리 회수권을 가위질을 잘 하면 11장으로 만들었던 아련한 추억도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br><br>2008년입니다. 1989년 어린이의 버스요금이 70원이었습니다. 한나라당의 대표가 되겠다는 분은 버스를 한번이라도 타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이점이 한나라당의 대표로서는 아주 적합한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br><br>지난 4월 국회의원 선거 당시, 서울 동작 을 에서 맞붙었던 정동영 후보가 정몽준 의원을 향해 “재벌은 서민의 생활과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다.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펼 수 없다.”라고 비판한데 대해 “발모제는 꼭 대머리가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대머리가 아닌 사람도 발모제를 만들 수 있다”는 발모제論을 들고나왔습니다. <br><br>결국 그는 정동영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습니다. 자신은 대머리가 아니지만, 대머리를 위해서 발모제를 잘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는 발모제를 만들 기술도, 생각도 없어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대머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전혀 고민해보지도 않고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br><br>한나라당은 서민과 중산층을 위해 일하겠다고 하지만, 실상 그들의 정책은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책이 아닙니다. 예를 들자면, 종부세 폐지, 소득세 감면, 법인세 감면 등등은 결코 서민을 위한 정책이 아닙니다. 18대 국회에서 첫 법안 발의를 한 한나라당 이혜훈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강남부자들의 배를 더 채워주는 것이었죠. <br><br>한나라당 정책의 본색은 땅부자, 아파트부자, 소수재벌, 수구언론을 위한 정책입니다. 정당의 색깔이 그러하다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비난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비난받아야 하는 이유는, 정당의 색깔을 교묘히 숨기고 서민과 중산층을 위하는 것 처럼 위장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번 대표 경선을 기회로 한나라당이 그 색깔을 분명히 해주길 바랍니다. <br><br>정몽준 의원은 한나라당의 대표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재벌, 아파트부자, 땅부자 등 가진 사람을 위한 정책을 펴는 정당의 대표로서 버스비가 얼마인지는 몰라도 됩니다. 어차피 재벌, 땅부자들이 버스타고 다닐 일은 없을 테니까요. <br><br>마지막으로 정몽준 의원께 조언 하나 드리지요. 앞으로 민생을 살핀다는 명분으로 서민 사는 지역에 친히 행차하시거들랑, 교통카드 하나 구입하셔서 버스를 타시고 버스요금은 얼마인가, 버스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구경하시고, 교통카드 단말기는 어떻게 생겼나, 환승 할인은 어떻게 하는가를 좀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70원 내시고 버스타시면 안됩니다. 그러면 ‘무임승차’로 현행범으로 체포될 수도 있으니까요.<br><br>* 본 포스트를 원문출처를 표기하여 퍼가는 것은 좋으나, 무단으로 퍼가는 것은 <span style="COLOR: #ff0000">좌시하지 않겠습니다</span>. <br><embed src="http://api.bloggernews.media.daum.net/static/recombox1.swf?nid=1386048" width="400" height="8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bgcolor="#ffffff" quality="high"></embed><br><br>			 ]]> 
		</description>
		<category>Political Thinking</category>
		<pubDate>Sat, 28 Jun 2008 04:55:35 GMT</pubDate>
		<dc:creator>달구</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용산에서 바가지 쓴 이야기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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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용산전자상가에서 첫 번째 바가지를 쓴 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인터넷도 생소한 그 시절, 용산전자상가에 가면 내가 갖고 싶던 삼성전자의 “마이마이” 워크맨을 싸게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인천에서 용산전자상가로 쇼핑을 갔다. 중학생이 뭘 알겠는가? 이곳 저곳 기웃거리다가, 어느 인상 좋은 아저씨에게 워크맨이 얼마냐고 물어봤다. 이어지는 아저씨의 장황한 설명. 그래서 얼마에요? 라고 물으니 15만원 달라고 했다. 거기에다가 일제 이어폰까지 포함해서 17만원 이라고 했다. 이 정도면 싸도 아주 싼 거라고 그랬다. 순진한 중학생이 싸다는 말을 듣고, 그 동안 모아둔 용돈을 털어, 기분 좋게 구입했다. 그 당시 팝송듣기를 즐겨 했던 터라 “Love Always”라는 팝송 모음 테이프를 들으면서 즐겁게 귀가했다. <br />
<br />
그 다음날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자랑했더니, 삼성전자 대리점을 하는 집 아들이 “이거 10만원이면 사는건데 뭣하러 용산까지 가서 비싸게 주고 사왔냐?” 라고 했다. 더불어 “ 이 이어폰이 무슨 2만원짜리 일제야? 이거 짝퉁이야!” 라고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이 억울한 심정을 어떻게 풀 수 있을까 하면서 화를 삭이고 있을 때, 친구들은 그냥 똥 밞은 셈 치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다시 용산에 가서 따져서 돈을 돌려받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때, 나의 해결책은 이 워크맨을 미친듯이 듣자. 그래서 아예 뽕을 뽑자. 라는 생각이었다. 아울러 다시는 용산전자상가에 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br />
<br />
그런데, 어제 나는 용산전자상가에서 생애 두 번째로 바가지를 썼다. 요새 DSLR카메라가 사고 싶었는데, 마침 인터넷 쇼핑사이트에 ‘전시’제품으로 싸게 나온 상품이 있었다. 혼자 사는 처지라 택배 받기도 마땅치 않아서 직접 매장에 나가서 수령하기로 했다.  용산전자상가에 가서 매장을 찾고 매장에서 상품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었다. 점원은 나에게, 렌즈에 끼우는 필터는 구성품에 포함되어있지 않으니까 하나 사라고했다. 그래서 나는 얼마정도 하는지 물어봤다. 일제  MATIN UV필터 입고가격이 1만5천원인데, 매장까지 나오셨으니 원가에 드리겠다고 말했다. 이제 막 카메라에 입문하는 내가 렌즈 필터까지 신경쓰지는 못했는데, 뭐 싸게 주겠다니까 그럼 사겠다고했다. <br />
<br />
기분좋게 학교로 돌아와서, DSLR카메라를 오랫동안 사용해온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보급용제품으로 입문하기 좋은 카메라를 샀다고 칭찬해줬다. 그래서 나는 내가 1만5천원에 구입한 필터를 보여주며, 이게 1만5천원이 맞냐고 물었다. 친구가 필터를보더니 던진 한마디 “이!뭐!병!”  그래서 나는 “내가? 아니면 카메라판매점이?” 라고 했다. 친구는 “ 둘 다! 3000원 짜리 필터를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한테 만오천원 받고 판 놈이나,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싸다고하니까 사는 너나 똑같다.” <br />
<br />
부글부글!! 생애 두번째 용팔이에게 바가지 당한 사건 발생이었다. 자그마치 5배나 폭리를!! 그래서 나는 낡이 밝기를 기다려 업체에 전화했다. 1만5천원짜리 필터를 준다고 하고선, 실수로 3000원짜리 준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아니랜다. 그건 1만5천원짜리가 맞다고한다. 매장판매가가 1만5천원이 맞댄다. 그래서 “인터넷 최저가가 3000원인데, 3000원 짜리를 내가 5천원 주고 샀다면 별말 안하겠지만, 이건 너무한 것 같다. 그리고 입고가격이 1만5천원이라고하면서 원가에 준다고해놓고 이제와서 1만5천원이 매장판매가격이라고 하는건 소비자를 우롱하는거 아니냐”고 말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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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팔이들의 장황한 설명이 시작된다. “ 해당제품은 일본산이 있고, 한국산이 있는데 둘은 원가자체가 차이가 난다” 부터 시작해서, “우리도 좀 먹고 살아야하지 않겠냐”는 애걸복걸까지, 장황한 말로 나를 설득하려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알고싶은 건 그게 아니다. 내가 DSLR초보자 라서 잘 모르는 것 같아보이니까, 나에게 바가지를 씌운게 아니냐? 라고 핵심을 찔렀다. 주춤하는 점원. 그럼 그 필터를 가지고 오면 환불해주겠다고 했다. 용산까지 가는 일은 별거 아니지만, 왠지 매장에 가게되면 한바탕 싸우고 올 것 같아서, 그냥 반값만이라도 돌려달라고했다. 그랬더니 7천원을 송금 해주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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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전에 카메라 매장 사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우리 직원이 고객님께 무례를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라면서, 다음부터 이런일 없도록 주의하겠다고 한다. 용산전자상가가 많이 달라졌다. 예전같았으면,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낙장불입 몰라?” 이런말 들었을텐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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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인터넷으로 모든 정보를 찾을 수 있어서, 용팔이들이 예전만큼 바가지 씌우는게 힘들다고하지만, 해당제품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으면 영락없이 용팔이들의 작업이 들어온다고한다. 그래서 정식 대리점이 용산보다 좀 비싸더라도 확실한 사후관리와 서비스를 위해서 정식 대리점에서 가전제품을 구매하는 사람이 늘어나서, 용산전자상가가 불황이라고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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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전자상가의 ‘일부’ 저급한 용팔이들 때문에, 용산전자상가는 ‘바가지천국’ ‘모르면 당한다’의 오명을 쓰고 있다.  상인회 자체적으로 자정노력을 하고 있다지만, 나조차도 친구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내가 바가지 쓰고 왔다는 걸 모를뻔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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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서 전자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은 한푼이라도 아껴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소비자들은 용팔이들에게 “고객만족”, “고객감동” 이런건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 “고객우롱”만 안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용팔이들 스스로가 밥줄 끊는 행동은 자제함이 옳지 않겠는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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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生의 한 가운데</category>
		<pubDate>Fri, 27 Jun 2008 04:56:26 GMT</pubDate>
		<dc:creator>달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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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우리가족의 6.25에 대한 기억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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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내가 큰아버지 라고 부르는 분은 사실 아버지의 친형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촌형님이다. 즉, 할아버지의 형님의 아들인데, 내가 그를 큰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사연은 6.25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1년생인 첫째 큰아버지는 10살 되던 해, 1948년생 둘째 큰아버지는 3살되던해, 1950년 그들의 아버지를 잃었다. 그의 아버지 즉, 나의 큰할아버지는 6.25 당시 마을 이장을 맡고 계셨다고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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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시작된 전쟁은 모두 다 알다시피 북한군은 무서운 속도로 남하했다. 경기도의 조그만 시골마을도 인민군이 들어닥치기 시작했다. 문제는 유엔군과 남한군이 서울을 수복한 9월 28일 이후에 벌어졌다. 남한군이 수복한 지역을 점령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소위 '부역자' 색출작업에 나섰다. 그 때, 마을 이장을 맡고 계셨던 큰할아버지는 누군가의 모함으로 인해 읍내 한복판에서 총살당하셨다. 전시라서 그랬을까? 재판도 없고, 자기변호의 기회도 없이 누군가가 큰할아버지를 향해 내민 손가락으로인해 그는 아무말도 못하고 총살 당할 수밖에 없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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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살아계실 적에, 큰할아버지의 제삿날에 나에게 들려주신 이야기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형님의 시신을 수습해야겠다는 생각에 한밤중에 산처럼 쌓여있는 시체더미에서 미친듯이 형님의 시신을 찾다가 군인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면 죽은 사람인 듯 엎드려 계셨다고 한다. 당시 남한군은 총살당한 시체를 가족이 수습하지 못하게했다고 한다. 간신히 형님의 시신을 찾은 할아버지는 형님을 들쳐업고 엉엉 울면서 집 근처 야산에 형님의 시체를 모셨다고한다. 할아버지는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는데, 그 때마다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리시곤 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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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형님을 잃었고, 큰아버지는 아버지를 잃었다. 할아버지는 큰집까지 부양해야했고, 형님의 자녀들은 그의 자녀가 되었다. 가족중 한사람이 인민군부역자의 죄목으로 총살당했다는 사실은 그 이후 우리 가족의 크나큰 멍에가 되었다. 실제로 큰할아버지는 인민군에 부역하지 않았지만, 인민군부역자로 낙인 찍힌 집안은 언제라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집안으로 인식되었다고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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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생인 둘째 큰아버지는 시골에서 소팔고 논팔아서 그 돈으로 대학을 다니셨다. 외무고시 공부를 하셨는데, 시험성적은 우수했지만, 연거푸 면접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나중에 면접관이 하는 말이 "당신은 신원조회에서 자꾸 걸려, 집안에 문제가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버지없이 자란것도 슬픈데, 그 아버지가 빨갱이로 몰려 총살당한 사실은 그의 진로까지도 가로막았던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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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로 인한 슬픔은 우리 민족 누구나 갖고있는 것이겠지만, 우리 가족은 한 사람의 모함으로 너무 많은 것이 달라져버렸다. 만약 그때 큰할아버지가 동네 이장이 아니었다면, 큰할아버지를 모함하고 밀고했던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모함도 없었을테고, 총살도 없었을테고, 죽는 사람도 없었을텐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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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역사에 '만약 ~이라면'은 성립하지 않지만, 만약 그랬다면 6.25에 대한 아픈기억 때문에 평생을 힘들게 사는 사람이 없었을텐데 말이다. 우리 가족을 포함해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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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나의 노래</category>
		<pubDate>Wed, 25 Jun 2008 00:58:32 GMT</pubDate>
		<dc:creator>달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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