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족의 6.25에 대한 기억
내가 큰아버지 라고 부르는 분은 사실 아버지의 친형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촌형님이다. 즉, 할아버지의 형님의 아들인데, 내가 그를 큰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사연은 6.25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1년생인 첫째 큰아버지는 10살 되던 해, 1948년생 둘째 큰아버지는 3살되던해, 1950년 그들의 아버지를 잃었다. 그의 아버지 즉, 나의 큰할아버지는 6.25 당시 마을 이장을 맡고 계셨다고 한다.

1950년 6월 25일 시작된 전쟁은 모두 다 알다시피 북한군은 무서운 속도로 남하했다. 경기도의 조그만 시골마을도 인민군이 들어닥치기 시작했다. 문제는 유엔군과 남한군이 서울을 수복한 9월 28일 이후에 벌어졌다. 남한군이 수복한 지역을 점령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소위 '부역자' 색출작업에 나섰다. 그 때, 마을 이장을 맡고 계셨던 큰할아버지는 누군가의 모함으로 인해 읍내 한복판에서 총살당하셨다. 전시라서 그랬을까? 재판도 없고, 자기변호의 기회도 없이 누군가가 큰할아버지를 향해 내민 손가락으로인해 그는 아무말도 못하고 총살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적에, 큰할아버지의 제삿날에 나에게 들려주신 이야기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형님의 시신을 수습해야겠다는 생각에 한밤중에 산처럼 쌓여있는 시체더미에서 미친듯이 형님의 시신을 찾다가 군인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면 죽은 사람인 듯 엎드려 계셨다고 한다. 당시 남한군은 총살당한 시체를 가족이 수습하지 못하게했다고 한다. 간신히 형님의 시신을 찾은 할아버지는 형님을 들쳐업고 엉엉 울면서 집 근처 야산에 형님의 시체를 모셨다고한다. 할아버지는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는데, 그 때마다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리시곤 했다.

할아버지는 형님을 잃었고, 큰아버지는 아버지를 잃었다. 할아버지는 큰집까지 부양해야했고, 형님의 자녀들은 그의 자녀가 되었다. 가족중 한사람이 인민군부역자의 죄목으로 총살당했다는 사실은 그 이후 우리 가족의 크나큰 멍에가 되었다. 실제로 큰할아버지는 인민군에 부역하지 않았지만, 인민군부역자로 낙인 찍힌 집안은 언제라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집안으로 인식되었다고한다.

1948년생인 둘째 큰아버지는 시골에서 소팔고 논팔아서 그 돈으로 대학을 다니셨다. 외무고시 공부를 하셨는데, 시험성적은 우수했지만, 연거푸 면접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나중에 면접관이 하는 말이 "당신은 신원조회에서 자꾸 걸려, 집안에 문제가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버지없이 자란것도 슬픈데, 그 아버지가 빨갱이로 몰려 총살당한 사실은 그의 진로까지도 가로막았던 것이다.

6.25로 인한 슬픔은 우리 민족 누구나 갖고있는 것이겠지만, 우리 가족은 한 사람의 모함으로 너무 많은 것이 달라져버렸다. 만약 그때 큰할아버지가 동네 이장이 아니었다면, 큰할아버지를 모함하고 밀고했던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모함도 없었을테고, 총살도 없었을테고, 죽는 사람도 없었을텐데..

지나간 역사에 '만약 ~이라면'은 성립하지 않지만, 만약 그랬다면 6.25에 대한 아픈기억 때문에 평생을 힘들게 사는 사람이 없었을텐데 말이다. 우리 가족을 포함해서..


by 달구 | 2008/06/25 09:58 | 나의 노래 | 트랙백(7) | 덧글(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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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08/06/25 10:45
슬픈 가족사이군요. 글쓴이가 말한것처럼 6.25로 인해 우리민족은 너무 많은 상처들을 갖게됐지요. 높으신양반들의 생각,행동이 이처럼 국민들을 힘들게하는게 어제 ,오늘 다를 바가 없지만..
Commented by 달구 at 2008/06/25 11:16
그러게말입니다. 결국 국민이 봉인가봅니다...
Commented by 나는 나 at 2008/06/25 10:49
혹시 그 밀고자가 일제 시대에 일본 순사한테 붙어 먹은 사람은 아닌지.워낙 민족의 혼란한 시기라 큰 아버지같은 억울한 분들 많쵸.지리산에선 빨치산이라고 괜한 민간인들 집단 총살시킨 사건도 잇고.
Commented by 달구 at 2008/06/25 11:18
할아버지 생전에 제가 밀고자가 누군지 알아보려고 하지 않으셨냐고 여쭤봤을 때, 할아버지께서는 밀고자에 대해서는 누군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빨갱이부역자'라는 낙인이 찍혀있는 집안에서 그 밀고자를 찾아내고자한다면 더 큰 화를 불러올 것이었기때문이었다고 합니다.
Commented by at 2008/06/25 10:52
우리 큰 아버지도 육이오전쟁때 군인으로 참전하여 돌아가셨는데...십대때 참전하여 전사, 서울에 있는 현충원에 안장되었다는데..시신없이 ...뭐~그렇다고요
아, 내가 군인이던 6년전에 후방 유해발굴을 하였는데...야산에 뼈들이 몇개씩 보이더라...그리고 구덩이에서 완전 유굴 2구도 발굴하였는데....하지만 신원을 알 수 없어다는...인식표도 없어서..우리 큰 아버지도 이렇게 아무 산에 뼈로 돌아다니고 있겠군...슬픈 현실이네
Commented by 달구 at 2008/06/25 11:38
슬픈 현실이네요. 유해수습도 빨리 이루어져야할텐데요..
Commented by 진실의 at 2008/06/25 10:52
불과 3일만에 서울을 점령당하는데 전쟁 난지도모르고 피난도못간 순수한 백성들을 내팽개치고 이승만과 당신 정권수뇌들은 이미 대전으로 도망가서 방송을 통해 수도서울을 끝까지 사수하겠다고 방송했다! 자기들은 도망가고 정부만 믿은 백성들은 안심하고있다가 수난 당한 6.25....그런 불쌍한 국민을 지켜주지도못한 정권이 돌아와서는 부역자라고 처형하고 고문했다니!
Commented by 음.. at 2008/06/25 11:13
그 백성들을 부역자로 몰아서 살해한 그들이 지금의 뉴라이트 랍니다.
Commented by 달구 at 2008/06/25 11:20
결국에는 모든 피해를 국민이 짊어지게되나봅니다. 지금도 역시 그런 상황인 듯 싶구요..
Commented by 조갑제 at 2008/06/25 11:00
빨갱이의 후예인 글쓴이는 성추행범보다 더 나쁘다!
Commented by 달구 at 2008/06/25 11:20
음...이 댓글은 조갑제씨와 한나라당을 욕하는 댓글이로군요.. ㅎㅎㅎ
Commented by 음.. at 2008/06/25 11:14
뉴라이트가 한 짓입니다. 저들은 그것만 했을까요? 8.15 광복 후에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빨갱이로 몰아서 처형했습니다. 그런데도 뉴라이트를 밀어주는 국민들이 밉습니다.
Commented by 달구 at 2008/06/25 11:21
뉴라이트가 뿌리를 그쪽에 두고 있는것 같긴한데, 국민들이 뉴라이트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이유는 아마도 조-중-동 때문이 아닐까합니다.
Commented by 서진석 at 2008/06/25 11:25
인간의역사는 피의역사,죄악의 역사이지요 먼지와도같은 이해관계 때문에 형제가 형제에게 미움과 증오의 독을 내뿜는 슬픔의 역사입니다 자기의 미래에 어떤결과가 기다리는지도모른채...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갇고 서로를 용서하고 끝없이 용서해야만 합니다 우리인생 여정을 마치는날 선악간에 모든걸 심판하시는 선하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힘내시고 행복하세요..
Commented by 달구 at 2008/06/25 11:39
용서.. 말은 쉽지만 쉽게 할 수 없어서 힘든게 용서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음헬헬 at 2008/06/25 11:25
가만 보면 전쟁통에 싸우다 돌아가신 분 보다 빨갱이로 몰려서 돌아가신 분이 더 많은 것 같은 느낌도 들곤 합니다.
Commented by 달구 at 2008/06/25 11:40
그게 더 슬픈 역사지요. 이념도 사상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죽임을 당했으니..
Commented by 휴우 at 2008/06/25 16:10
북한에서 득세해서 내려오면 악덕지주라고 죽이고 남한이 득세해서 올라가면 빨갱이라고, 빨갱이 도와줬다고 죽이고.... 언제나 피보는 건 서민들뿐. (정말 악독한 것들은 죽어도 싸고!!!)
Commented by 한국인 at 2008/06/25 11:26
이장이 아니셨더라도, 아마 무고를 했을겁니다.
팔 수 있는 소와 논이 있었다면, 상당한 지주 집안이셨을텐데,
악인들이 숨어서 얼마나 시기와 질투를 했겠습니까.
우리나라에는 이런 민초들의 서러운 역사가 있습니다.
그래도 선하게 사셔서, 오늘이 있으니, 축복이십니다.
정말 축복이 크십니다.
Commented by 달구 at 2008/06/25 11:41
님의 말씀처럼 그랬을수도 있겠다고 생각해봅니다. 악덕지주도 아니었는데... 시기와 질투는 언제나 어디서나 생기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어리벙벙 at 2008/06/25 11:32
역사의 아픈 한페이지
Commented by 주사 at 2008/06/25 11:35
수고했네 헤드에 거느라고도 애 썼는데
남한군이라고 쓴걸 국군이라 고쳐야 티가 안나지
Commented by 달구 at 2008/06/25 11:42
님아! 주사맞으러 갈 시간 놓치셨나요? ㅎㅎㅎ 차라리 국방군이라고 쓸 껄 그랬나? ㅎㅎ
Commented by 에효 at 2008/06/25 11:47
꼭 우리동족끼리만 치른 전쟁이 아니었지요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힘없는 우리나라가 끼어 있던게 잘못입니다 일제식민지를 우리 힘으로 벗어나지도 못했거니와 해방후 나라를 건국할 힘도 없었던게 천추의 한입니다 일본 식민지에서 미국식민지(북은 소련 식민지)로 바꼈다는것 외에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죠 다만 해방을 시켜준 강대국들은 일본과는 달리 직접통치 않했던게 다른점일겁니다 북한 정권은 해방후 쓰레기 친일파와 기득권 세력을 몰아 내는데 일단 성공을 한것으로 보입니다 (주관적임 )-이유는 공산당이 들어 섰기 때문입니다 잘살고 잇는 사람들은 민중의 적 ㅎㅎㅎ 하지만 남한은 전혀 그러질 못했죠 독립운동하던 사람들이 사상이 달라서 여러 당을 만들게 되고 그러는 과정에서 미군정은 자기 입맛에 가장 맞는 돈많은 세력을 끌어 들이게 되는거죠 (기득권) 그 세력의 대부분은 친일파입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앞장을 서서 만든 나라가 되는 겁니다 물론 독립 운동가도 더러 있엇지요 미군정 초반에는 남로당이 합법정당이었다 봅니다 하지만 돈없고 빽없는 당은 항상 지게 되어 있습니다 순식간에 지하정당이 되고 그들은 북으로 올라갈수 밖에 없엇을겁니다 나중에 김일성이 남한해방(지금 생각해보면 그럴수도 잇을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을 기치로 쳐내려오게 되고 .......전쟁을 누구의 잘못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큰 사건이지요 아마도 정당한 평가를 내릴려면은 통일후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내려질것 같아요 그냥 주절대봅니다
Commented by gudeh at 2008/06/25 21:17
맞는 말씀입니다..
Commented by 은발의신사 at 2008/06/25 11:53
나는 전후세대이지만 돌아가신 나의아버지는 6.25로 모든 것을 잃었다. 해방 전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자리를 잡고 양복점 재단사(해방전후 일류 재단사 월급은 쌀50가마이상이었다.) 로 이름을 날리던 나의 아버지 - 50년전까지 아버지 별명이 마카오 대머리였던 것 같다. - 는 외아들로 모은 돈으로 이북 고향땅에 부모님(나의 할아버지, 할머니)을 모시고 자녀들을 키우기 위해 단신 서울에서 번 돈으로 고향에 땅을 사고 재산을 형성하셨는데 6.25가 터지면서 갑자기 왕래가 끊기셨다. 나이많은 국군으로 북진하면서 고향땅에 갔으나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 거기에는 나의 친형도 3분이나 있었다는데 해방후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도 들을 수 없다. 부모와 자녀와 모든 재산까지 날려버리시고 부상당한 몸만 남았던 나의 아버지, 명절 때마다 "배부르시다."면서 거의 하루종일 굶으셨던 나의 아버지를 기억합니다.
Commented by 주사 at 2008/06/25 11:56
달구야 여기다 글써놓고 죽치고 앉았으니
네가 티낸다고 스스로 광고하는 거지
국방군? 뽕 중독이 심하구나 들켰다고 지우지는 마라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08/06/25 19:33
주사 맞으러 가야지 병시나 'ㅅ'ㅗ
Commented by 송이고모 at 2008/06/25 12:03
김일성이 6.25전쟁을 일으킨게 어째서 그럴수 있다고 생각하나요.6.25전쟁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요. 미국탱크에 두 여학생이 죽었다고 얼마나 미국을 비판합니까? 그런데 그보다 많은 사람이 죽어간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관대한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편협한 것은 아닌가요. 북한을 비판하면 편협된거고 미국을 비판하면 민주주의고 이런사고고 오히려 편협된것 같아요. 우리 아버지는 6.25때 홀로 남하하셔서 우리들을 낳으셨는데요. 평생 다리를 절룩거리셨어요. 전쟁때 다친거지요. 민주주의는 좋지만 북한이나 남한이나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체제는 독재라고 바판안하면서 박정희에 대해서는 많이들 비판하더군요. 박정희의 유신체제가 옳은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경제만큼은 잘했지요. 나는생각합니다.6.25전쟁은 김일성이 많은 사람을 죽인 전쟁이라구요.
Commented by 에효 at 2008/06/25 12:04
독립운동을 하던 집안은 일제시대 경찰에 요시찰집안으로 낙인이 찍힙니다 해방후 그 형사들이 다시 미군정의 형사로 남게 되지요 그리고 대한민국의 경찰로 남게 되구요 한번 요시찰 집안은 시대를 달리해도 계속 요시찰 집안이 됩니다 나중에 정치적으로 그걸 이용해서 정권의 하수인 역을 톡톡히 해냅니다 요시찰 집안이 기득권에 항복을 한다던지 같은 편이 되면 괜찮지만 그 반대 세력에 있게되면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 없애버렸지요
불온세력이라 하여 보도연맹이라는 단체에 가입시켜 놓은후 전쟁이 시작되자 마자 모조리 숙청을 시켜버린 일이 단적인 예일겁니다 불온 세력 만든것은 친일경찰이엇거든요
아마도 모르긴 해도 부역자 명단또한 그 지역 경찰에 의해 만들어 졌을거로 보이네요 개인감정으로 동네 이장 죽게하는 이웃도 잇나요?
Commented by 보아스 at 2008/06/25 12:22
송이고모 글 잘 썼어요 김일성 김정일 없으면 우리나라 잘 사는 나라될 수 있었을 겁니다.민족에 원한을 쌓은 천추의 역적들입니다.



























































Commented by 강찬 at 2008/06/25 20:44
맞습니다 근데 그걸 모르는 븅신 쪼다들 빨갱이들이 설치니 ~~ 다 잡아 쳐죽여~~!!
Commented by 해뜨는 집 at 2008/06/25 12:27
우리 큰 아버지는 여순사건때 죄익으로 몰려 돌아가셨다.
당시 우리 할아버지는 대단한 지역의 갑부고 유지셨는데 논과 밭이 엄청 많아 집앞에서 보이는 땅과 논이 전부 할아버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명한 지주셨단다. 여순사건이 터지자 그런 할아버지를 보호하겠다고 큰아버지가 당시 좌익에 관여했던 사람들과 사건해결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셨다고 한다.
진압군이 들어오고 실제 좌익에 관여했던 사람들은 모두 도망간 뒤였고 큰 아버지는 별 문제 없다고 판단하고 집에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진압군에게 총살당하시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화병으로 돌아가셨죠. 대가집에 어른이 없으니 그 큰 집안은 불과 몇년 사이에 풍지박산이 나서 지금은 시골에 몇분 살지도 않아요. 흐흐
Commented by 에효 at 2008/06/25 12:33
625를 단지 김일성이가 쳐내려와 많은 사람 죽이고 우리나라 반쪽 냈다고 어렸을때부터 세뇌 당해온 분들은 이번 기회에 다시 공부를 더 하세요 좋은 책들 많이 있는데 (서점 가면 수두룩합니다 ) 아직까지 초등학교시절 배운 지식으로 여기 댓글 남기지 마시고요 공부도 않고 무조건 빨갱이가 잘못햇다 하지 마시고요 그래서 꼴통이란 소리 듣습니다 제발 공부좀 하세요 . 요즘 학생들한테 물어 보든지요 공부 못하는애들 말고 공부 잘하는 애를 자식으로 두었다면 아마 잘 가르쳐 줄겁니다
Commented by 진철 at 2008/06/25 12:54
님은 얼마나 잘알고 계시기에 그러시나요? 저 위에 분들이 과연 그런걸 몰라서 김일성 탓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님은 저 윗분들의 아픔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계시기에 그런말 하나요? 한번 말씀해주세요
위엣분 이야기가 단지 625가 누구책임인가 묻고 있는가하는 글인가.
Commented by 주사 at 2008/06/25 12:55
에효야 1을 알다 2를 아니까 세상을 다 아는것 같고
남들이 다 무지해 보이고 3을 아는 사람은 없는것 같고
잘난척에 가르치고 싶어 어깨가 우쭐대지고 그러니?
학교 공부를 잘하지 못했는데 이상한 공부를 남들이 잘한다니
네가 똑똑한데 학교 공부는 잘못되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것 같지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08/06/25 19:33
주사 맞아야지 병시나 'ㅅ'ㅗ
Commented by 나우누리 at 2008/06/25 12:56
에효님 그럼 누가 내려와서 죽였나요 ? 뭐가 꼴통이라는건지 대체 이해를 못하겟네요 ?? 빨갱이가 전쟁일으키면서 이나라 절단나고 한거 아닙니까 뭐가또 있나요 ?
Commented by GQ at 2008/06/25 13:02
우리는 6.25를 잊어서는 안됩니다..그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6.25가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저가 겪어보지는 못했어도.. 6.25에 대한 실상을 알기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앞으로도..
우리의 자손들에게는 피로 얼룩진 일들을 겪지 못하게 해야합니다..
그게 우리가 앞으로 해야할 일이고. 우리가 지켜야 할 일입니다..
Commented by 명랑이 at 2008/06/25 13:13
익명으로 남의 블로그에 몰려와서 테러를 하는 저급한 사람들이 자칭 "우익" 맞지요?
Commented by 벽계수 at 2008/06/25 13:34
그와 반대로 인민군들이 쳐 내려 왔을때 환영해 반기고 나가서 빨간 완장 채워주니까.. 뭔 큰 권세라도 얻은양으로 민간주민들 독촉해대며 부역차출에 앞장서서 끌어내고 군인,경찰가족 밀고하여 찾아내고 감정있던 사람들 지주로 몰아 죽창으로 찔러죽이고..인민군 보다 더 잔인하고 무서웟던..일명 연락원들 지방뺠갱이들.. 그동안 눌려지내던 이들이 지난 십년동안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마치 자기들이 뭔 민주화 투사인양 민주화를 떠들면서 근대사를 전복 6.25전쟁도 북침이라하며 자기 자식뿐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들에게 미화하고 거꾸로 인식시켜 왔으며..수복후 이런 연락원들의 죽임을 추적 유골 발굴까지 해대며 당시 국군과 경찰들의 실책찾기에 올인하며 국군에 대한 반감과 국가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며 무조건적 수구세력에 대한 반감을 조장해 왔다. 이들에 의해 살해당한 군경가족들로서 우리는 6.25를 치를 떨고 영원히 고통스럽게 기억할 따름이다. 그 당시 죽임을 당한자들은 단순부역자들이 아니다. 만명중에 한 두명정도 실수도 있었겠지만 경찰,군인가족을 손가락질했던 그 손가락들에 대한 보복이었을것이다. 대다수 그들 좌익후예들의 변명이란 좌익으로 몰려서.. 어쪄구.. 차라리 과거의 잘못 생각에 과오를 저지렀었다고 사죄하고 같이 살아 가는것이 옳은것이지..60여년을 내리 오로지 한 일가가 피의 독재로 업압 장악하고 있는 북한김일성의 가계들의 그런 체제를 아직도 추종하며 오히려 남한에서 민주화를 떠드는 한심한 존재들.. 그들이 바로 그 뺠갱이들의 자식들이다.
Commented at 2008/06/25 13:3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가을이 at 2008/06/25 13:50
저희 시아버님은 황해도 의주가 고향이십니다.
옥수수밭이 끝이 안보였던 대농의 11남매중 막내이셨는데 6.25때 가족 모두 총살당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막내인 아버님도 북한군으로 강제징집돼서 끌려내려오셨답니다.
갖은 고생 끝에 한국군에 포로로 잡혀 부산과 거제도의 포로수용소에서 밤이면 쥐도새도 모르게 사람이 없어져서 화장실조차 제대로 갈 수 없을 만큼 무서운 공포속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포로 석방 할 때 남한에 남겠다고 하셔서 자유의 몸이 되신 후에 한국군으로 입대를 하신 분입니다.
약 20여년 가까이 국군으로 복무하신 저희 아버님.
지금 사람들은 금강산관광이니 평양관광이니 하지만 아버님은 절대 북한에 안가신답니다.
가족 모두가 공산당에게 몰살을 당하셨으니까요.
지금도 북한을 못믿으시는거죠.
너무나도 한많은 생을 살아오신 저희 아버님의 생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6.25 정말 잊어서는 안되는 우리의 가슴아픈 역사입니다ㅠ
Commented by 길동홍 at 2008/06/25 14:29
6.25전쟁은 혼란한 사회와 준비되지 않는 사회는 망하는 법을 생생하게 일깨워 준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너무 자만하고 있지 않는지요?
북한이 절대 남침 못한다고???
그러나 방심은 금물입니다... 북한의 뒤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 해서는 않됩니다....
그들이 충동질 할때는 다시 전쟁을 우리가 원하던 원하지 않든 격어야 하는 것이 약소국의 비애입니다...
지금 우리는 누구때문이라고 잘잘못을 따지기 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는 거시적인 안목이 필요합니다.
좀더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언제까지 촛불에 발목을 잡혀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제 열강의 틈새를 뚫고 비상 할 대한민국호를 건설해야 합니다.
학자는 강단에서 근로자는 일터에서 학생은 학업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삼페인은 머언 훗날 우리의 후손이 터뜨리기를 바라며... 아직 우리는 배가 고픕니다...
더나은 미래의 부국 대한민국을 위해...
Commented by ㅋㅋㅋ at 2008/06/25 15:04
아직도 냉전시대에 사시는 분이 계시네요..ㅋㅋ 그냥 웃고 갑니다..6.25가 아픈 역사고 그 원흉이 김일성인건 확실합니다만
그때 당시 국군도 무고한 사람들 많이 죽인거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이죠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08/06/25 19:34
국정 홍보처 알바님 ㅈㅅ ^.^ㅗ
Commented by 이관익 at 2008/06/25 14:37
지금도 안늦었습니다. 철두철미한 국가관을 갖고 국가를 사랑합시다.
Commented by 뭐야 at 2008/06/25 15:15
이거 딱 봐도 대한민국 정부와 국군에 반감이 들도록 선동하는 게 보이는데?

빨갱이 집안 맞구만!! 오늘 6.25다!! 제발 오늘만은 깝치지 말아라 이 간첩들아!!
Commented by 진정한빨갱이는바로 at 2008/06/25 18:04
너같은데? 어디서 보수적 노인네 한나라당 알바가 설치나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08/06/25 19:35
너나 깝치지 마라 파시스트 자식
Commented by 강찬 at 2008/06/25 20:48
맞습니다 빨갱이집안 맞네요~~ 빨갱이놈들 다 쳐죽입시다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08/06/26 00:29
맞습니다 맞고요 일단 강찬이네 집부터 쳐죽입시다~
Commented by 이번에 at 2008/06/25 15:33
안타까운 일이네요. 비합리적으로 사람을 적으로 몰아 죽이는 행태는 북한이나 남한이나 다를 바 없군요.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목숨을 수단으로 여기고 국민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가 낳은 사건이었습니다. 진상을 지금이라도 밝힐 수 있으면 좋겠다만...
Commented by gma at 2008/06/25 18:07
북한군은 인민들 안 죽였나봐요?
Commented by 강찬 at 2008/06/25 20:49
북한군이 죽인건 착한일이라네요~~ 죽일놈의 빨갱이들이~~ 쳐죽일놈들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08/06/26 00:29
그리고 강찬이는 김일성 애널써커
Commented at 2008/06/25 18:3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사과쨈 at 2008/06/25 18:55
우리 친할아버지는 지역 지주셨는데 북한군이 잡으려고 하니까 주변 사람들이 그런 사람 아니다~라면서 막아줬다고 하네요. 다행히 인복은 있으셨는지... 피난오면서 재산이 다 박살나서 우리집은 지금 매우 가난하지만 말이죠;;;;고생하셨는지 일찍 돌아가셔서... 얼굴도 모르는 친할아버지지만 저도 만약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라고 가끔 생각하곤 해요. 바로 우리들의 아버지가(울아버지 4살때 6.25)전쟁세대라고 생각면 진짜 바로 얼마전까지 전쟁했구나...라고 실감도 되고.. 요즘 돌아가는 사태도 웃기고... 좌익우익빨갱이 전 이 단어들 너무 어려워요...진짜..,,,근데 리플들 왜 이럽니까. 참 무섭네요...
Commented by 우리 at 2008/06/25 22:49
저희 할아버지도 똑같은 경우였어요.. 다행히 재산도 지키셨구요.
전쟁 같은 큰 일을 당할 때 주변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가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Commented by 청산 at 2008/06/25 19:22
40대 중반인 아줌마의 어릴적에 --- 제가 살든 옆집은 아저씨 아버지는 대학교수였는데 북한으로 갔습니다. 근데 그 옆집아저씨는 법대나와서 모든고시를 준비하였으나 면접에 떨어져서 폐인 되었습니다. 그 여동생도 빨갱이 집안으로 낙인이 찍혀 결혼도 못하고 50이 넘는걸 보고왔습니다. 6.25사변으로 인해서 그 집은 일어설수가 없었습니다. 어린 제가 보아도 부모가 지은죄로 인해서 모든것이 막혀있다는것은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왜 일제앞잡이 한 사람들은 떵떵거리며 살고 있습니까?
우리 국가도 해도 너무 한거 아닙니까?
왜 6.25 한국전쟁때 일은 연좌제를 하면서 일제강점기때는 나라를 팔아먹은 놈들 압잡이놈들은 연좌제를 하지 않았는지 나라의 법이 참 형평성이 맞지 않았다는것을 이제사 알겠네요.
예전에는 몰랐는데 요번 촛불집회하면서 옛일을 많이 상기 시켜보니 국가에서 일관성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국가에서 높은 고위공직자들이 다 일본 앞잡이들이 주권을 잡았기 때문이라는것을 어렴풋이 알겠네여
Commented by lee at 2008/06/25 19:28
유해발굴

6.25때 한강에 낙하한 미군비행기의 조종사 시체를 찾으려고 2008년도에도 수쿠버팀과 해군이예비역들이 한강을 뒤지고 갔다 이런식을 돌아가신분의 넉을 기려야 나라가 잘된다 우리도 지나갔지만 참전용사들에게 연금많이주고 잘 모시고 살다가 ㅡ돌아가시게 해줘야 한다
Commented by 어처구니 at 2008/06/25 19:51
부역안하믄 죽이는데 어쩔껴?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고 부역하면서 좀 더 살다가 죽는게 편하겠제
하지만 모함으로 죽으면 ..
Commented by green toma at 2008/06/25 20:08
가슴아프네요.
외국에서는 아직도 전쟁발발때문에 위험한 나라중 10위권안에 n,s korea 가 뽑힌다고 하네요.
사실 경산코발트 현장에 갔을때 민간인 학살에 대해 충격을 많이 받았는데
그런 민간인 학살이 전국에서 수십만에 다다른다는 사실은 전쟁이 얼마나 무차별적으로 사라을 죽이는학살현장이 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
Commented by 강찬 at 2008/06/25 20:42
김일성이는 온민족의 역적이란거~~ 몰라 ? 미친놈들 많구만~~ 다음 아고라에는 전부다 정신병자만 모여있다더만 진짜네~~ 미친 빨갱이놈들 다 쳐죽여~~!!
Commented by 영쓰 at 2008/06/25 20:56
미친... 완전 빨갱이에 세뇌됐네. 요새 빨갱이가 누가 있냐? 이 무식한 놈아~ 그놈의 좌파,우파로 미국과 소련이 우리 나눠서 6.25 일어나고 우리가 몇백만명이 죽었는데 아직도 이념논리냐? 짜증나는 자식. 내눈엔 미국,소련,중국 다같이 우리나라를 갈가리 찢은 죽일 놈들이다. 나는 김일성같은 독재자식도 싫고 너같은 친일매국좋아하는 우파자식도 싫다. 난 중도다. 어쩔래? 이자식아~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우익없다.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08/06/26 00:29
일단 강찬이는 삼청교육대부터 보내자 ㅇㅇ?
Commented by 영쓰님 맞아요 at 2008/06/25 21:12

쓰님,,,너무나 말잘하시네 ㅋ
Commented at 2008/06/25 22:2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JinAqua at 2008/06/25 22:49
저희 과(역사학과입니다)에 제일 연세가 많으신 교수님께서는, 아버님께서 남로당이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항상 신원조회에 걸려서 취직도 못하시고, 여러가지 차별에서 힘드셨다고 하시면서 국가에 대해 반감을 갖고 계시더군요.
휴, 게다가 달구님의 경우는 억울하게 당한 경우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어떤 상황이 되어도 다시는 6.25전쟁같은 일만은 더 이상 이 역사에 없어야겠지요
Commented by 목장별 at 2008/06/26 00:55
전쟁은 다시 일어나선 안 됩니다.
Commented by 무명씨 at 2008/06/26 01:03
제 할아버지는 해방후 전쟁전 빨치산 활동을 하시다가 전향해서 6.25때는 오히려 국군으로 종군하셨지요. 그래서 저희 집안은 연좌제때문에 크게 고생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고시공부같은거 하신 분도 없었지만......
Commented by 초하 at 2008/06/26 04:54
블로그를 통해 몰랐던 참 많은 다양한 사연의 참상을 듣습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런 아픔은 다시 찾아오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Commented by RyuHa at 2008/06/26 13:33
6.25를 잊으면 안됩니다.
또한 그를 이용해 국민 등쳐먹으려는 놈들도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냥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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