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마지막 수업
생각지도 못했는데, 오늘은 나의 대학 시절 마지막 수업이 있었다. 마지막 수업은 그 어느 학기의 마지막 수업이  그러하듯, 한 학기 동안 배운 것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고, 기말고사에 대한 짧은 언급으로 끝났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나는 집에 와서, 여의도로 갈 채비를 했다.

만원 짜리 와이셔츠를 입고, 띵띵이 사준 삼천원짜리 넥타이를 메고, 해준게 없어서 매일 미안하다고 하시는 어머니께서 5개월 카드 할부로 사주신 정장을 입었다. 그리고 중학교동창이자 대학동기인 한군으로 부터 빌린 정장가방을 맸고, 2년전 띵띵이 졸업하던 때 아버지께서 사주신 가죽 구두를 신었다.

오늘이 최종면접일 이었다. 증권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도 없고, 자격증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학점이 좋은 것도 아닌데, 그저 주식 투자 좀 해봤다는 경험만 갖고 지원한 증권회사였다. 학벌 탓인지, 상상을 초월하는 저학점에도 불구하고 서류는 쉽게 통과되었고, 인적성검사도 무사히 통과했다. 어렸을 때 웅변 좀 배운 덕분일까, 1차면접도 가볍게 통과했다.

버스를 타고 여의도로 가면서, 면접관이 어떤 질문을 할까 미리 생각해봤다. 그런데, 경험칙 상 어떤 질문을 할 거라고 예상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었고, 어떤 질문이 나오더라도 청산유수처럼 흘려넘길 생각을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았다.

면접은 생각보다 쉽게 진행됐다. 면접관들이 물어보는 질문에 자신감있는 목소리로 우렁차게 이야기했고, 언제나처럼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난 아저씨들 앞에만 서면 자신감이 넘친다. 스스로 면접에 대해서 만족하고 있었는데, 사장이란 사람이 면접 총평을 했다. 내 차례가 되자 사장은 인문학 전공자가 자격증도 없이 단순히 주식투자 경험 좀 있다고 해서 증권회사에서 자산운용을 한다는 것은 사장입장에서 봤을 때 좋지 못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단순히 지원자를 겁주기 위함인지,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면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 동안의 대학생활이 어떠했는지 회상했다. 짧지않은 시간 동안 나는 대학에서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어떤 생각들을 하면서 살았고, 그 생각들을 행동으로 옮겼는지 스스로 물었다.

내 대학생활의 시작이 어떠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학에서의 첫 수업이 어떤 수업이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남들과는 다르게 살고 싶었고 결코 평범한 삶을 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다양한 활동을 했고 다양한 경험을 했다. 강의실에서 배우는게 지식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나는 되도록 수업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어쩌다가 수업에 한번 빠지게 되면그날은 부모님께 정말 죄송했다. 등록금이 한 두 푼도 아닌데, 수업에 빠지는 것은 부모님이 어렵게 번 돈을 낭비하는 것 같았다.

대학생활 동안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나를 학생운동의 길로 이끌었던 L형은 지금도 활동가의 길을 걷고 있으며, 나에게 지성인의 자세를 설파했던 선배 J형은 꼿꼿한 자세를 누그러뜨리고 **신문 문화부 기자로 일한다. 열심히 활동하던 학생운동을 벗어나서, 나는 고시의 길로 접어들었고, L형은 나를 기회주의자라고 비난했다. L형의 지적은 사실 맞는 말이었다. 내가 고시의 길로 들어선 것은, 사실 기회주의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공무원인 아버지는 내가 학생운동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정도가 아니라, 나를 죄악시했고 나는 살기 위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내가 교수가 되길 바랬지만, (물론 지금도 바라고 있지만) 나는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으로 고시공부를 시작했다. 고시 합격한 후 해외 연수 기간에 박사 학위를 받아서 교수로 일하는 옆 동네 학교 최모 교수의 케이스를 접했기 때문이다. 나도 교수가 되고 싶었다. 물론 지금도 교수가 되고싶다. 그러나 나는 우리집 형편에 나를 유학까지 보내서 공부시킬 여건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돈 없어서 공부 못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말들 하지만, 그건 엄연한 사실이다. 내 나름대로 교수가 되기위한 차선책으로 생각했던 고시공부는 생각만큼 좋은 결과를 주진 않았다.

원래부터 잘못된 길이었다. 삐딱이 기질이 다분한 나는 공무원과 어울리지 않았다. 고시공부 한답시고 3년을 보냈다. 군대에서 고생하다 '상이용사'가 된 덕분에 더이상 아버지께 등록금 부담은 주지 않아서였을까. 고시공부는 그럭저럭 잘 해나갔다. 그런데, 더 이상 내 자신의 잘못된 욕망에 감추어진 삐둘어진 본성을 숨길 수가 없다. 그리고 더 이상 숨기고 싶지도 않았다.

자의반 타의반, 취업해야겠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면접도 보러 다니지만, 마음 한 구석 허전한 마음은 여전하다. 오늘 나는 대학시절의 마지막 수업을 들었고, 회사의 최종면접을 봤다. 모든 것의 시작은 모든 것의 끝에서 생긴다고 하지만, 새로움을 준비하지 못한 끝은 언제나 밋밋하기 마련이다.

괴테가 이르기를, 고민하는 한 방황한다고 말했던가? 방황하는 한 고민한다고 말했던가? 뭐라고 말했든 나는 지금 고민하고 방황한다. 스물 일곱살의 나이에 어떤 삶이 나에게 더 어울리는 삶이 될 것인가를. 대학 생활의 마지막 수업이 있었던 오늘,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 만큼은 아름답진 않았지만, 과연 나는 이 이후의 새로움은 어떻게 준비해야하는 걸까..

난.... 대학에서의 시간을 연장하기로했다.  내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학자가 되기위해....

기형도 선배의 시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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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구 | 2008/06/11 23:52 | 나의 노래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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